이준효 칼럼-지하 전동차 안에서

기사입력 2019.02.2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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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지하 전동차를 탔다. 마침 빈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 노인네의 허리 통증이 고질병이 되어 복잡한 대중교통이 여간 고통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편안히 앉아 감사의 기도를 하고 눈에 들어오는 승객들을 보며 동승자의 의식을 공유하려 할 때 번쩍하고 뇌리를 스치는 감탄사 하나가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그것은 ! 모두 진지하도다!’였다. 눈을 감은 자들의 표정도 진지했고, 조용히 앉아 있는 자들의 표정도 진지했고, 더군다나 스마트폰을 들고 무언가 열심히 문자를 찍는 젊은이들도 진지했고, 무엇을 검색하는지 엄지손가락을 계속해서 밀어대는 젊은이들도 진지했고, 화면에 눈을 고정시켜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는 사람들도 진지했다. 어떤 친구들은 양손 엄지손가락을 번갈아 아주 빠르게 어떤 키를 터치하는 모습도 진지했다.
본 필자는 호기심에 무엇을 저렇게 진지하게 할까 궁금하여 옆에 앉은 젊은 친구들의 빠른 손가락 놀림을 넌지시 훔쳐보았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화면을 보아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 필자 역시 순간 포착의 소중한 직감을 놓칠세라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끄집어내어 양손에 들고 본 칼럼을 독수리 타법으로 쓰 내려간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한 글자 한 글자 텅 빈 머리를 짜 낸다.
이윽고 가슴 한편에서 주님의 책망이 심장을 강타한다. ‘너는 백발 노옹이 되도록 나의 길을 달려오는 동안 매사에 저들보다도 더 진지했느냐?’라고 물으시는 질문 앞에 유구무언이다. 사명의 무게를 주님 저울에 올려놓았을 때 주님 뜻에 턱 없이 못 미치는 눈금을 보며 통회의 눈물로 손수건을 적신다.
전혀 생산성 없는 무익한 그 무언가에 진지하게 몰두하는 저 동승객들 틈에 끼어 나름의 진지한 글을 쓰 내려가면서 평생을 몸담아 달려온 강단의 그림을 연상하며 자아 성찰에 몰입한다. 과연 저 진지하면서도 의미 없어 보이는 표정들 앞에서 전혀 다른 색깔의 의미를 주창하며 당당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마음의 옷을 찢는다. 부끄럽다. 이 모지랑이 믿고 맡겨 주신 강단을 어떻게 내려갈까 그저 주님께 죄송할 뿐이다.
순간 잽싸게 엉덩이부터 들이미는 중학생 1년 정도의 어린 친구가 있었다. 이미 그 친구의 손에는 핸드폰이 켜진 채로 들려져 있었고 재빠른 그 친구, 옆자리 빈틈을 꿰어 차자마자 핸드폰을 두들긴다. 역시 오락 게임에 푹 빠져 있다. 손가락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민첩하고 능숙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을 때 또 주님의 세미한 메시지가 필자의 뇌리를 노크한다.
나의 특명을 받은 자야! 너는 내 분부를 준행함에 있어 민첩성과 세밀성에 얼마나 자부할 수 있겠느냐? 보아라! 저렇게 세상 사람들은 백해무익한 일에도 목숨을 건 민첩성을 담보로 재바르지 않느냐?’ 주님의 당찬 물음이 책망과 힐책의 가시로 찔려와 주님 면전에 고개를 들 수 없다. 부끄럽기 그지없다. 주님 특명의 진지함이 결여된 오히려 진부(陳腐) 하게도 타락 일변도의 세속적 요구와 가치에 함몰된 시대적 조류에 타협하며 비굴한 생존력에 재바르지 않았는지 죄책감으로 상한 심령이 통회의 눈물을 흘린다.
다시 한 번 진지한 승객들을 둘러보며 내 안의 자아에게 다윗의 메시지를 던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42:5),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103:1). 다윗의 물맷돌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동승객들의 다양한 진지함을 기억의 창고에 밀어 넣으며 지하철역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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