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효 목사의 목양칼럼 |소금 반 스푼의 교훈

기사입력 2018.10.0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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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효 목사의 목양칼럼 |
 
머지않은 과거의 어느 날 함께 연합 전도에 힘쓰고 계신 후배 목사님이 볶은 가루소금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자신의 치아가 튼튼하지 못해 늘 치과 의사의 신세를 지고 있던 차에 볶은 가루소금으로 양치질을 며칠 계속했더니 치아의 아림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곧 매일 치과 의사가 아닌 가루소금 반 스푼의 희생으로 요즘은 치아 걱정에서 해방되었다는 요지였다. 그 얘기를 듣고 가까운 마트에서 삼천 여원짜리 볶은 가루소금 한 봉지를 사서 매일 한 번씩 차 스푼 절반 정도의 분량으로 양치질을 하고 나머지는 치약으로 양치질을 했는데 놀랍게도 늘 욱신거리며 아림이 있었던 치아의 증상이 사라진 것을 필자 역시 경험하고 가족에게도 권하여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찌들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굵은 간 소금을 칼자루로 콩콩 빻아 치약 대용으로 양치질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현실적으로 치과 전문의들의 의학적 처방이나 민간 처방의 상식으로는 치아 손상을 염려하여 지나친 소금 사용을 주의시키고 있어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가루소금 반 스푼의 고마움은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양적 가치는 지극히 미미하여 측정 불능이겠지만 질적 가치는 사용하는 자에 따라 그 평가 기준에 다소 차이가 있겠으나 욱신거리고 아린 아픔이 완화된 것은 분명했다. 여기서 필자의 의도는 소금 예찬에 일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또한 소금의 의학적 성분을 논하고자 함도 아니다. 그저 가루소금 반 스푼의 아주 작은 분량의 역할과 그 가치에 빗대어 우리 인생의 역할과 가치를 조명해 보는 기회를 얻고자 함에 있을 뿐이다.
시월은 가을의 절정기다. 시각적으로 일 년 사계절 중 가장 호경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 삶의 실제에 있어서도 호식의 풍요를 선물하는 계절이다. 경작이 인생 노동의 역할이라면 가을은 바로 그 열매로 노동의 가치를 수확하게 한다. 그래서 가을이 주는 열매 한 알 한 알이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의 폭염에도 땀 흘려 가꾼 인생 노동의 보람이요 가치인 것처럼 가루소금 반 스푼 또한 염전의 땅방울이 결실한 인생 노동의 열매다. 이렇게 소금 반 스푼의 주제를 다루며 인생의 노동과 그 열매를 거론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생에게 노동의 가치를 부여한 현장에서 수확되는 결실이 우리 인생과 그 생존에 기꺼이 헌신하며 희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수고의 땀방울은 우리 인생이 흘렸어도 창조주 하나님의 기르시고 열매 맺게 하시는 섭리와 질서 안에서 주어지는 결실이기에 인생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 열매로 낙을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창조하는 일에 우리 인생 또한 제 역할과 사명에 헌신할 수 있고 희생할 수 있는 본질적 근거를 제공해 준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인생으로 하여금 날마다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 이 같은 질서와 원리를 깨닫게 하셨고 또한 그렇게 살게 하셨다. 그러나 인생은 많은 꾀를 내었고 질서와 원리에 왜곡되는 세상 역사를 밤잠을 설쳐가며 조장해 내고야 말았고 그 역사는 세속사라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꽃피우고 있다. 그야말로 가루소금 반 스푼 보다 못한 인생, 그 존재 의미를 잃어버린 비참에 스스로 자처하여 떨어지고 만 것이다. 죄와 오염의 정도가 극에 달해 피할 수 없는 죄책의 현장은 사망의 권세가 지배하는 심판의 장이 되었고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없이는 해방의 자유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참담한 인생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어떤가? 가루소금 반 스푼 앞에 당당하게 자존감을 내세울 수 있겠는가?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역할론에 박수를 보낼 수 있겠는가? 생존경쟁이 아닌 삼겹줄의 지체론적 개념 앞에 지금까지 아집과 고집으로 일관하며 고수해 온 자신의 인생관과 신념을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인생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여 살게 하며 인생의 본질적 역할과 가치를 위해 교훈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깨우치는 만물의 면전에서 당당하게 존재감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 부끄러운 역사 앞에 누가 더 잘나고 못났는가에 준거 틀을 만들어 차별 의식을 고조시켰는가?
결국 그 책임은 우리 인생이 져야 할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일 터,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지체 간에 경쟁 사회를 지양하고 합력과 협력이 주도하는 공존 사회를 지향하는 의식 개혁이 자유의 보루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물론 각 개개인의 재능이나 선호하는 기호에 따라 혹은 학습량이나 경력의 정도에 따른 역량의 차이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당연지사이겠지만 이 역시 각자에게 부여된 역할로 이해한다면 조화 있는 사회적 기능에 제 몫을 다할 수 있다는 자아 정체성이 진정한 행복으로 이끌 것이라 믿는다.
성경은 인체의 각 지체들을 비유하여 교회나 사회적 기능에 헌신하는 구성원들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성령의 은사론에서도 이 원리를 배제시키지 않는다. 현상 세계의 불편한 현실은 결코 창조자의 본질론적 그림이 아니다. 절대적 회개가 인간 회복의 영원한 과제이듯 인간에 의해 훼손되고 변질된 현상 세계 또한 탄식함으로 회복의 때를 기다리고 있음을 숙지하고 가루소금 반 스푼의 역할과 가치가 주는 교훈 앞에 개혁과 수정의 여백을 차근차근 메꿔가는 지혜와 슬기가 우리 인생의 이상이 되고 삶의 실제가 되기를 위해 고군분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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