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교수의 선교사 이야기

조지 맥쿤 (George S. McCune, 尹山溫) 2
기사입력 2018.07.0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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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맥쿤 (George S. McCune, 尹山溫) 2
이상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가 한국을 떠날 때의 일화는 여지껏 소개되지 못했다. 당시 숭실중학교 3학년에 재학하고 있었던 김형석 교수는 이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지금도 생생한 것은 맥쿤 교장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던 마지막 예배 시간 장면이다. 맥쿤 교장은 빨간 표지로 된 당신의 저서를 전교생에게 한권씩 나누어 주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예수님께 호소하면 다 해결 될 수 있다는 주제의 책이었다. 그날 오전 채플시간의 분위기는 삼엄했다. 일본 경찰들이 강당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형사들이 강당 뒷방에서 경찰서로 통하는 전화통을 붙들고 감시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학생 500명 앞에 나타난 교장 선생님은 오른쪽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높이 들면서 하라’(do)라는 고함을 일곱 번 외쳤다.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것이 우리가 본 교장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채플시간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강당에서 교문을 통해 학교 틀로 달려갔다. 숭실전문학교 앞까지 뛰어가면서 숭실학교 만세를 외쳤다. 사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쳐야 했으나 배치된 경찰들 앞에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선교부에서는 학교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 학교는 신사참배를 강요당했다.”
역서 김형석 교수가 말하는 빨간 표지로 된 맥쿤의 저서란 다름 아닌 인생문제와 그 해결이라는 책인데, 1934년에 발간되었는데 1500부가 인쇄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영문제목은 Solve Your Problems with Jesus였으니 김형석 교수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
일 년 후 숭실중학교는 완전히 폐교되었고, 평양 제3공립중학교라는 일본인 학교로 바뀌었다. 일본인 학생들을 위한 제1중학교, 평양고보라고 불리던 한국인 학교는 제2중학교가 되었다. 한편 한국을 떠난 맥쿤은 하와이 들러 4주간 체류했는데, 이때 하와이 한인연합교회에서 연설했고, 그 연설문을 후에 미국 상하원에 보내졌다. “미국의 친구들”(Friends in America)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맥쿤은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가 일본헌법 28조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와 1858년 미일조약과 다른 국제조약에서 보장하는 해당 국가의 종교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주장했다.1)
 
미국으로 돌아간 맥쿤은 시카고 근처의 무디성경학교(The Chicago Moody Bible Institute) 교장으로 일하기도 했고, 선교사들을 가르치며 한인 유학생들의 간행물인 The Korean Student Bulletin의 자문위원(Board of Advisors)으로 활동했다. 또 각종 한인 모임에 참석하여 한국의 현실에 대해 강연하거나 한인유학생들에게 도움을 베풀었다.
노년의 때를 보내던 그는 일제의 전쟁전책으로 한국에서 전화의 불길이 일어났던 1941127일 시카고 장로교병원에서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그 날이 일본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여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날이었다. 19633.1절에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독립유공자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했다.
그는 4남매를 두었는데, 안나(Anna Catherine McCune, 1906-1995), 조지(George M. McCune-GMM, 1908-1948), 엘리자벳(Elizabeth Margaret, 1911-1995), 그리고 샤논(Shannon McCune, 1913-1993)이었다. 큰 아들 조지 매쿤은 평안북도 선천에서 출생하였는데, 태평양전쟁기 미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국(OSS)과 국무성(the Department of State) 등에서 한국에 대해 가장 권위 있는 정보를 제공했고, 후에는 버클리대학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했다. 불행하게도 심장병으로 1948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둘째 아들 샤논 맥큔 또한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1939년에는 클라크대학(Clark University, Massachusetts)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태평양전쟁기에는 정보장교로 근무했다. 전쟁이 끝난 후 여러 학교에서 지리학 교수로 일하면서 한국에 관한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또 일본 오키나와의 민간인 장관과 경제관련 부처(Economic Cooperation Administration-ECA)의 지역책임자로 일하기도 했다. 장녀인 안나의 아들 로버트 킹던(Robert Kingdon)은 위스콘신대학교의 교수이자 16세기 역사학자이며, 제네바교회 컨시스토리 회의록을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로서 1980-81년 미국교회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각주1)김형석,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두란노, 2018), 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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