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현 교수의 인물로 본 한국교회 설교사(4)

이성봉 목사의 설교세계
기사입력 2018.06.0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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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봉 목사의 설교세계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는 말과 같이 고난의 시대에는 그에 걸 맞는 인물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일제 시대의 수탈과 한국전쟁의 동란으로 참혹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한 부흥사가 있다. 바로 전국적으로 대중적 지지를 받으면서 부흥의 물결을 일으킨 부흥사 이성봉(李星鳳, 1900-1965)이다. 이에 그의 아름다운 설교의 여정을 함께 떠나보도록 하자.
 
1. 이성봉의 생애와 사역
1928-1963년은 민족사적으로 그 유래가 없을 정도로 엄청난 시련과 고난의 시기였다. 1910년으로부터 시작하여 1945년까지 지속된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한국민의 식민화, 그 뒤를 이어 발발한 3년간에 걸친 한국전쟁이라는 최대 비극이 이시기에 발생했다. 이러한 두 사건은 민족의 운명 전체를 결정하는 운명적 사건 그 자체였다. 이러한 혹독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보면 복음을 경험할 수 있는 호기(好期)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서 복음을 확장하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이성봉이다.
이성봉은 190074일 평남 강동군 간리에서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는 여섯 살 때 온 가족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엄격한 모친의 신앙교육으로 여섯 살 때 신약을 일독할 정도였다. 그는 경신소학교를 졸업했지만 피폐한 가정 경제로 인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부모를 도와 과수원 일을 하게 되었는데 차츰 신앙으로 부터 멀어지고 타락한 청년시절을 보냈다. 이런 중에 골막염이라는 병을 얻어 3년간 병상에 누워 있던 중 철저한 회개를 통해 씻은 듯이 병이 낫게 되는 신유를 경험했다. 이 체험을 계기로 경성성서학원(서울신대 전신)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여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19283월에 신학교 졸업) 그 당시는 감독정치의 파송제로서 수원교회를 개척하고(1928-1930), 목포교회(1930-1936), 신의주교회(1936-1937)에 이르기까지 9년간 목회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큰 부흥을 경험하여 목회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가 부흥사의 길을 들어서게 된 것은 1937년 성결교 총회에서 전국 순회 부흥사로 임명이 되어서 1963년 말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교파를 초월하여 복음을 전파하는데 온 생을 불살랐다. 그는 재림에 대하여 설교한 이유로 사리원 경찰서에서 1개월간 수감이 되었으며 해방과 더불어 이북에서 무너진 성결교회 재건운동을 시작했다. 임마누엘 특공대를 조직하여 약소교회를 위한 순회 집회를 하였다. 196582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저서들은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자서전), 설교집은 사랑의 강단, 임마누엘 강단, 부흥의 비결과 강화집으로 천로역정 강화, 요나서 강화, 명심도 강화가 있다. 그의 일평생을 통한 부흥사역은 한마디로 말로 못하면 죽음으로라는 자서전 제목처럼 참으로 희생적이면서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길선주, 김익두, 그리고 이성봉을 한국의 초기교회의 3대 영적인 거장으로 보아도 조금도 손색이 없지만 특별히 이성봉은 청렴하고 정결하여서 목회자로서 부흥사로서 조금의 흠결도 없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금까지 존경을 받아오고 있다.
 
2. 이성봉의 설교특징들
이성봉은 개 교회 목회를 한 경험을 기초로 전국적인 부흥사로 1930-60대를 풍미한 부흥설교자다. 물론 초기 선교사들의 설교형태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다른 초기 설교자들과 구분되는 그의 독특한 설교의 정체성이 있다. 이에 이성봉의 설교의 특징들을 살펴보자.
첫째, 대중적인 위로를 전한 부흥설교이다. 이성봉의 설교는 초기 선교사들이 가진 비정치적이고 개인 구원 중심적이며 청교도적인 주제설교의 설교신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만이 가지는 독특한 설교의 형태가 있는데 바로 부흥설교’(revival preaching)이다. 그의 부흥설교는 일제의 압제와 한국전쟁이라는 두 사건으로 인해 온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요청되어진 설교의 형태이다. 그의 부흥설교에서 부흥이라 단어는 오늘날 흔히 이해되는 교회의 양적성장이나 외형적 팽창이 아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기초로 한 영적 각성과 교회됨의 의미이다. 이성봉에게 있어서 참된 부흥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철저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 당시에 관통했던 신비주의나 이단 사이비와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다. 서울신대 설교학 교수인 정인교는 그의 부흥설교의 특징으로 그의인격적인 면은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부흥설교의 탁월함에 대한 인정이요. 나아가 그의 설교가 설교전달(communication)의 한 모범임을 긍정하는 것이다. 추상(秋霜)같은 죄의 질책에 가슴을 뜯으며 뒹구는 회중, 재치와 유머에 웃음바다가 된 예배당, 회중과 설교자가 하나가 된 설교시간, 수많은 사람의 회심과 변화이다라고 언급했다. 이성봉의 부흥설교는 그 당시 가장 쉽고 서민적인 용어를 선택하면서 설교했고, 남녀노유 빈부귀천, 지역을 불문하고 회중의 사랑받는 설교를 하였다. 특히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가장 큰 절망과 고통 속에 있는 백성들에게 소망과 위로를 전하는 부흥설교였다.
둘째, 회개와 구원에 기초한 사중복음 설교이다. 이성봉의 부흥설교의 특징은 요즈음의 무조건적인 기복사상에 입각한 축복설교와는 차별성을 갖는다. 그의 설교는 철두철미한 회개와 구원의 확신이라는 양대 산맥을 지닌 설교이다. 이성봉은 철저한 회개와 구원의 확신을 기초로 그가 전한 복음은 성결교회의 신학사상인 중생·성결·신유·재림의 복음을 초지일관 전했다. 이 사중복음을 초교파적으로 전국적으로 설교함으로 타 교단으로 부터 어려가지 제제와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지만 사중복음은 그의 체험적인 신앙이었으며, 성결교회의 정체성을 마지막 순간까지 잃지 않았다.
셋째, 삶과 인격으로 전하는 설교이다. 이성봉의 삶과 설교는 신행일치의 면이 강하다. 그는 설교하기 이전에 그의 삶과 인격이 보증수표가 되어서 설교가 회중에게 공감과 마음의 문을 이미 열어놓았다. 한국의 무디라고 불리는 이성봉 목사는 이성문제, 금전문제, 명예문제에서 전혀 흠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성직자로서의 성결한 생활과 영혼 구원을 위한 열정적인 순수한 신앙을 가지셨던 분이기에 삶으로 설교하신설교자의 모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성봉의 설교에서 아쉬운 부분으로는 은혜의 복음적인 요소인 오직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의 부분은 상당부분 간과되어서 설교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설교에서 허무주의적 요소가 보이는데 이는 암울한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또한 부흥설교에서 강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도에 대한 강조점이 부족하고, 본문의 밀도 있는 본문주석이 빈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0-60년대의 가장 암울한 대한민국 시기에 곤고한 백성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는 그의 설교는 한국 부흥설교의 좋은 모델이면서 원형(原型)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3. 나가는 말
이성봉은 일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실의와 절망에 빠진 상황에 처한 백성들에게 소망과 위로, 그리고 회개와 은혜를 전한 대중적 부흥사이다. 그의 쉽고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위로의 설교, 회개와 구원에 기초한 사중복음 설교이다. 그러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인격을 통한 진리의 전달이다. 이성봉의 청렴함, 명예를 멀리하는 신실함과 재정과 이성에 대하여 깨끗한 모습, 그리고 오직 복음을 향한 열정 등은 그의 설교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고귀함이다. “설교가 인격을 통한 진리의 전달이라는 명언은 다시 한번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에게 크게 울리는 경종(警鐘)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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