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교수의 선교사이야기 - 루푸스 선교사

한국에서의 천문학 연구의 개척자 루푸스 선교사
기사입력 2018.04.0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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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천문학 연구의 개척자 루푸스 선교사
내한 선교사가 한국학 연구에 기여하거나 한국에서의 인문학 연구에 기여한 이들이 있고 한국에서의 서양 음악 혹은 서양 스포츠 보급에 기여한 일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한국에서의 자연과학 연구에 기여한 경우는 드물기도 하지만 이런 점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의 인식과 관계없이 한국에서의 천문학 혹은 우주과학 연구에 기여한 선교사가 있었는데, 그가 윌리 칼 루푸스(Will Carl Rufus, 1876-1946)였다. 그는 매우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 잊혀진 인물이었다. 그는 양화진에 묻히지 않았기 때문에 양화진 선교사들의 생애와 사역을 취급한 전택부의 이 땅에 묻히리라’(홍성사, 1986)에나 내게 천개의 목숨이 있다면’(한국교회사학회, 2013), 혹은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네’(홍성사, 2015)에 소개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다른 기록에서도 루푸스 선교사에 대해서는 재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이 루푸스에 대한 작은 안내가 되었으면 한다.
 
루푸스는 캐나다 온타리오 차탐(Chatham)에서 187671일 태어났다. 초중등학교 과정을 마친 그는 미국 미시간 주 앨비언에 위치한 앨비언 칼리지(Albion College)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1902년 졸업했다. 그 후 플린트(Flint)와 랜싱(Lansing)에서 수학교사로 활동했고, 그 후에는 2년간 감리교 목사로 활동했다. 1907년에는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치기 위해 미국감리교선교사로 내한하여 이때부터 1912년까지 평양 숭실학교와 서울의 연희대학에서 가르쳤는데, 한국에서 그는 류부수(劉芙秀)로 불렀다.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미시간대학에서 천문학을 연구하고 1915년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취득한 후 다시 한국으로 나와 숭실대학에서 2년간 교수했다. 학문적으로 탁월했던 그는 미시간 대학으로부터 초빙을 받고 1917년 미시간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이곳에서 재직하는 동안 천체관측소 소장을 역임하는 등 미국을 대표하는 천문학자로 활동했다. 그는 미국에서 천문학사를 저술한 첫 학자이기도 했는데, 194692170세의 나이로 앤아버 근처 쿠룩드 레이크(Crooked Lake) 자택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부인 메릴린(Merlyn)과 두 아들 하워드(Haward)와 허만(Herman)이 유족이다.
 
그런데 루푸스는 숭실대학에서 가르치면서 한국에서의 전통천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고, 그 연구 결과를 아시아왕림학회 한국지부가 발간하는 간행물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에 발표했다. 첫 논문은 1913년 제4(23-66)에 게재된 이태조의 구체(球體) 평면도’(The Celestial Planisphere of King Yi Tai–Jo) 라는 논문이다. 그의 한글과 한문, 그리고 한국역사와 천문학에 대한 깊은 식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 한편의 글은 1936년에 간행된 제26(1-48)에 기고한 조선에서의 천문학’(Astronomy in Korea)이라는 논문인데, 한국의 역사와 과학사 천문학사를 관통하는 그의 깊은 식견에 놀랍기만 하다.
그의 한국인 제자가 이원철(李源喆, 1896-1963)인데 그는 우리나라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첫 인물이다. 1919년 연희전문학교 수물과를 졸업하고 연희대학에서 교수 하던 중 루푸스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유학하여 1921년 루푸스가 공부한 앨바인대학 4학년에 편입하여 공부하고 19226월 미시간대학으로 옮겨 가 천문학을 공부하고 루푸스의 지도로 1926년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국 천문기상학의 개척자로 불리고 있다. 그는 독수리자리 7번째 밝은 별, 에타(η) 밝기가 변하는 맥동변광성을 증명했는데, 가설로 존재하던 맥동변광성을 최초로 증명하여 세계 천문학에 기여하였고, 1945년 광복 직후 관상대(오늘날 기상청) 복구하여 10여 년간 170여 명의 기상, 천문 전문 인력을 양성한 한국의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다. 이런 인물이 배출된 것은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천문학을 가르치며 이 분야 연구를 개척했던 루푸스, 곧 류부수가 남긴 열매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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