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효 목사의 목양칼럼 |

지구촌이 흔들린다
기사입력 2018.03.20 17:5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 이준효 목사의 목양칼럼 |
지구촌이 흔들린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 모든 존재와 그 자리를 계획하사 바로 그 자리에 모든 존재를 만드시어 실존케 하시고 역사를 이끌어 갈 생명력과 제 역할들을 부여 하셨을 때, “그대로되는 최초의 순종이 창조주의 시각을 흡족하게 하였고, 심지어 마지막 인간 창조의 완성을 시점으로 보시기에 심히 좋아 하셨던 기사를 우리는 성경의 창조 기사에서 읽어 낼 수 있다.
우리는 이 창조 기사에서 피조 세계의 존재론적 보존법칙과 역할론적 생명법칙을 분명하게 명시하시고 계심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대로로 표현된 순종은 무()에서 유()로 가는 결정이었고, 또한 그 결정은 모든 피조세계의 상호의존적 필요 관계에서 하나님의 지고선(至高善)을 지향하는 생육과 번성의 초석이 되어 하나님의 섭리적 원리에로 이끌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피조세계의 모든 존재에게 있어 최상 최대의 자산이 과연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는 원조 기사가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 인생의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온 인류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자 그 무엇에게도 내어 줄 수 없는 절대적 가치관이다. 그렇다면 여기 창조 기사의 그대로는 우리 인생과 함께 영원히 동반 되어야 할 실제임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시조 아담에게서부터 그 소중한 최상 최대의 자산을 등지고 말았고, 그 결과는 오늘에 이르러 혼란과 혼돈의 역사와 불편한 사회적 죄악상의 관영함에 몰아넣고 말았음은 가슴 아픈 사실이다. “그대로의 산길은 인류 대속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여전히 열려 있지만, 죄책과 오염의 결과로 의를 상실해 버린 인생이기에 자력으로는 그 산 길을 향해 돌이킬 수 없어 사망의 비참에 침몰되어 돌아 올 수 없는 영원의 종말로 치닫는 자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 지구촌의 실상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소돔과 고모라성을 추월해 가고 있고, 종교적으로도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사사시대를 뛰어넘어 말라기적 영적 침체에 매몰되어 버린 상태이다. 한 마디로 혼란의 시대를 횡단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시대적 추세에 반응하는 교회의 결단이다. 자칫 양적 성장의 빌미가 교회의 본질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 영적. 육적 혼란으로 흔들리는 시대적 조류에 휩쓸려 사회가 추구하는 생존 본능의 가치관을 목적한다면 교회의 세속화는 이미 피할 수 없음은 당연지사 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둘러싼 유대 사회를 보자. 유대교가 귀족 종교로 전략 되었을 때 생명의 빛 메시야가 오셔서 그들 가운데 계셨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정치적 기득권에 노예가 되어 백성들의 귀를 막았고 눈을 감겼으며 마음에 자물쇠를 채우게 하지 않았던가! 국가든 교회든 서민사회를 죄악시하거나 불편해 하고 귀족 사회를 표방하고 상류 사회를 선호하고 지향하는 한 부패일로의 길을 탈피 할 수는 없다.
신앙적으로 맘몬니즘(mammonism)을 뿌리로 한 번영신학이 각광을 받는 현대 사회에서 개혁주의 교회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 반응으로 시대적 추세를 표방할 수밖에 없는 기이한 현상의 보편화도 생존의 위기 앞에 넋두리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모두 스스로를 정당화 하려는 자기 체면에 불과한 궤변일 뿐임을 명심하자.
역사적으로 과거 북조 이스라엘의 왕조 아합 정부가 내세웠던 이방의 우상이었던 바알 숭배를 강요했던 종교정책 하에서 수많은 선지자들이 여호와 신앙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거부하고 혼합 종교 정책의 기수가 되어버린 저변에는 역시 번영신학의 추종을 부추기는 정치적 기득권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에게 돌아간 거짓 선지자라는 낙인은 이 땅에 성경이 존재하고 있는 한 결코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사악한 사회 속에서도 믿음과 진리를 파수한 칠천 명의 선지자와 엘리야의 일사각오가 있었음을 어찌 간과할 수 있겠는가?
현실적으로 개인의 인성이 흔들리고 가정이 흔들리고, 사회 각 계층이 흔들리고, 백년대계를 지향해야 할 교육의 현장이 흔들리고, 위계 사회를 지탱시켜 주는 윤리 질서가 흔들리고, 국가의 이념이 흔들리고, 교회와 신학이 흔들리고 심지어 이 지구촌의 지반이 흔들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 속에 끊임없이 도전 받아 온 비타협의 신앙과 진리체계가 지금 우리가 물려받은 엘리야적 배턴이라면 당연히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주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다.
이것이 기정사실 임에도 불구하고 흔들리고 흔들린다. 또 흔들리고 흔들린다.’는 탄식 소리는 결코 어제 오늘 만의 일이 아니다. 자만과 아집이 지나칠 대로 지나쳐 이미 늑대 소년의 외침으로 단정해 버린 지 오래다. 그럼에도 그 외침은 더욱 강렬해 지고 있다. 기대와 희망의 외침이 아니라 절망과 절규의 외침이다.
정치적으로 성군 다윗이라면 이런 시대적 상황을 어떻게 풀어 나갔을까? 성군은 아닐지라도 이방 나라의 고레스라면 어떤 정책을 도입했을까? 종교적으로 요한 칼빈이라면 어떤 개혁을 시도했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하나님과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주께 받은 명령 그대로의 순종을 명 하였었다.
신약의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당연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 갈 길을 끝까지 경주하라고 주문하였고, 더불어 바울 자신에게 새겨진 예수의 흔적을 가지라고 강권 하였으며, 사도 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고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궁극의 나라를 함께 대망할 것을 피력했다.
이제 그대의 고백과 실천이 남아 있다. 바로 주여 그 어떤 흔들림에도 흔들리지 않고 교회와 이 시대를 진리의 터 위에 반듯하게 바로 세우는 하나의 기둥이 되겠나이다.’라는 고백적 결단과 실천적 의지를 다지는 각오 말이다. 그리고 교회 교회마다 그리스도의 알찬 사역들이 새봄을 맞으며 흔들리는 시대를 진리의 터 위에 똑바로 일으켜 세우는 신실한 열매가 되어 지기를 대망하며 이 작은 목자의 가슴에도 봄맞이의 각오를 새롭게 다져 본다.
 
이준효.gif
 
<저작권자ⓒe뉴스한국 & www.enkorea.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56301
 
 
 
 
  • e뉴스한국(http://enkorea.kr)  |  설립일 : 2003년 6월 20일  |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 298 부산 YWCA 304호
  • 발행인 : 박수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정
  • 사업자등록번호 :  605-90-93848
  • 대표전화 : 051-462-5495 [오전 9시!오후6시 / 토, 일, 공휴일 제외(12시~1시 점심)]  |  메일주소 : enews88@hanmail.net
  • Copyright © 2007-2009 enkorea.kr all right reserved.
e뉴스한국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