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진 목사 칼럼 '어린시절"

기사입력 2018.02.2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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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김 세 진 목사
부산등대교회 담임
 
어린시절 끼니도 걱정할 만큼 가난하게 살았기에 설 명절만 기다렸다. 먹고 싶은 음식도 실컷먹고 용돈도 생기고 갖고 싶은 것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어린것들이 부모의 마음을 어찌 알꼬 만은 무슨 돈으로 어떻게 사왔는지 설 명절만은 새옷을 사주었다. 천지도 모르고 자신 것이 없으면 울고불고 어미아비가 죽던 말던 떼를 쓰고 울부짖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버이의 피를 짜 내는 것인데 망나니 짓 들을 하고 행패를 부렸었다. 아예 추석에 사서 설날까지 입게 하기 위해 부모님은 아이들이 클 것을 고려해 소매며 바지깃 이며 한두 치수 큰 것을 사와서 입혔었다. 그러다 몇 번 빨고 하다보면 다음 명절 때는 정말 맞춘듯 옷이 몸에 맞았다. 부모님들은 오래된 한복이나 친지들이 혹여 보내준 중고 옷가지들을 골라서 명절에 입곤 하셨다. 새끼들 옷 입히다 보면 부모님들은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하였을 것이다.
설날아침 이웃집들처럼 한상 그득히 차려놓고 하나님께 추모예배라고 예배를 드리는데 어디까지가 예배이고 제사인지 아이러니했다.
할머니는 신앙이 약해 서운하다며 술을 한잔 부어 드리고 작은 아버지는 교회에 안다니던 터이라 절을 하고 우리 집은 예배를 드리고 한방에서 예배와 제사가 동시에 이뤄지는 희안한 광경을 보는게 명절 이었다.
세월이 흘려 나중에는 할머니도 작은 아버지도 신앙을 가지고서야 하나님께 바른 추모예배를 드릴수가 있었다. 명절에 세상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 치우쳐 있지만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달랐다. 족히 십여리 넘는 거리에 있는 교회에 새벽기도 한번 빠뜨리지 않고 주야로 참여함은 물론 명절에는 물때를 만난 양 교회에 가서 살다시피 하셨다. 집을 비우고 교회에만 매달려 있는 것 같아 어릴 때는 불만도 있었다.
그런 내가 장성하여 목사 되고 아이들 키워 모두 출가시켜 보니 이제서야 부모님의 고마움에 생각만 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수많은 세월을 새벽 차가운 교회 마루바닥에 엎드려 우리 아이들 잘되게 해달라고 눈물로 울부짖었을 부모님 더 나아가 당신들이 세상에 없더라도 하나님만이 자녀들을 영원히 지켜 주실 줄 믿었기에 더 그러했을 것이다.
그 기도 응답으로 형제들이 한결 같이 하나님 잘 믿고 청지기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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