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교수 - 린튼가의 선교사들2

기사입력 2018.01.2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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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튼가의 선교사들2
<윌리엄 린튼 Willian Linton, 1891-1960 >
린튼가의 제2대 선교사는 윌리엄 린튼인데 그는 유진 벨의 사위였다. 윌리엄 린튼(William Alderman Linton, 인돈 印敦, 1891-1960)22세 때인 1912년 미국남장로교선교사로 내한하여 48년간 한국에서 의료, 교육분야 선교사로 활동하고 건강을 잃고 귀국하여 19601013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는 189128일 미국 남부 조지아 주 토마스 빌에서 텔 린튼의 셋째 아들로 출생했다.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그는 19126, 조지아 공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제너럴 일렉트릭사(General Electric Company) 입사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한국선교를 지망하여 그해 남장로교 해외선교부에 의해 교육 선교사로 임명을 받았다. 그해 823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하여 한 달 간의 항해 끝에 920일 목포항을 통해 입국했다. 그는 이때부터 한국에서의 교육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목포를 거쳐 군산지부로 가 영명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여 1917년에는 이 학교 교장이 되었다. 19193.1만세 운동을 목격했던 그는 첫 안식년으로 본국으로 돌아갔고 애틀란타에서 열린 남부지역 평신도 대회에서 3.1운동의 실상을 보고하며 평화적 시위가 일제의 만행으로 좌절되었음을 말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기도 했다. 안식년 기간 동안 그는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1921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안식년 후 다시 임지로 돌아온 그는 1922년 유진 벨 선교사의 딸 샬롯 벨(Miss Charlotte Bell, 인애자)과 혼인하게 된다. 샬롯은 아그네스 스콧 대학을 졸업한 23세 처녀였다. 그 후에도 교육선교사로 활동했는데, 전주 신흥학교로 가 교장으로 일했다. 두 번째 인식에는 콜럼비아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30년 졸업했다. 평신도선교사로서의, 한계를 경험하고 목사 선교사가 되기 위한 것이었다. 1930년 대 중반부터 신사참배가 강요되었다. 일차적인 대상은 기독교학교였다. 교육사업에 전념하던 그에게도 심각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남장로교 선교부는 단호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학교 폐쇄를 결정했다. 신흥학교 교장이었던 윌리엄 린튼 또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자진 폐교를 결정했다. 1937년이 일이었다. 그 외의 남장로교 선교학교인 전주 기전여학교, 광주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목포의 영흥학교, 정명여학교, 순천 매산학교, 군산 영명학교도 폐쇄되었다. 1940년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한국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94010월 미국 영사 마쉬(G. Marsh)는 선교사 철수를 명했고, 린튼은 가족과 함께 19401114일 한국을 떠났다.
한국을 떠나 있었으나 선교지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던 중 조선은 해방을 맞았고 해방 이듬해인 19466월 다시 내한했다. 116일에는 신흥학교 교장직에 복귀하여 학교를 재건했다. 그의 교육 활동 중 기독교대학 설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1956년에는 대전에 대전대학을 설립하고 학장에 취임했다. 2년 전 부터 준비해오던 대학 설립안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런 그의 공로로 린튼은 1957년 벨 헤이븐 대학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린튼은 학교 부지를 물색 때부터 전립선암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학교를 설립한 후 미국으로 가 수술을 받았으나 산적한 일 처리를 위해 완쾌되기 전에 내한했다. 평소처럼 학교의 일과 지역교회를 섬기는 일 등으로 분주한 일상으로 보냈는데, 병세가 심해져 미국으로 건너갔고, 1960813일 테네시 주 녹슨빌의 큰 아들 집에서 70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의 3남인 인휴(Hugh Macintyre Linton, 1926-1984)4남인 인도아(Thomas Dwight Linton, 1927-?) 또한 한국선교사로 헌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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