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현교수의 설교로 보는 종교개혁(12)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의 설교세계
기사입력 2017.12.2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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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로 보는 종교개혁(12)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의 설교세계
 
들어가는 말
루터, 칼빈, 그리고 츠빙글리에 비하여 덜 알려진 종교개혁자인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1504-1575)는 그의 사역의 온전함에 비하여 지금까지 평가절하 되어왔다. 만인의 목사로, 위대한 저술가로, 위대한 삶의 설교자로, 개혁교회 명 신앙고백을 탄생시킨 제 2세대 종교개혁자로서 요즈음 다시 평가되고 있음에 다행이다.
 
불링거의 생애
불링거는 1504년 스위스 취리히 인근 아르가우(Aargau) 지방의 소도시 브렘가르텐(Bremgarten)에서 로마가톨릭 교구 주임신부였던 아버지(Heinrich Bullinger senior)와 어머니 안나(Anna Wiederkehr)사이의 5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불링거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제가 되기를 원하여 12살 때 에머리히(Emmerich)에 있는 성 마르틴(St. Martin)수도원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블링거가 대학에 입학 할 즈음에 독일에서 루터의 95개조 사건을 필두로 종교개혁 바람이 급격하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때 전통의 고수냐? 종교 개혁이냐?는 두 갈래 길에서 블링거는 연구를 통하여 종교개혁에 대하여 긍정적이고 수용적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크로스(F. L. Cross) 와 리빙스톤(E. A. Livingstone)은 말하길 이즈음에 블링거는 루터와 멜란히톤의 저작과 츠빙글리의 설교에 대하여 연구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종교개혁의 원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했다. 그후 불링거는 로마 가톨릭의 잘못되고 미신적인 가르침에 대한 불신이 생겼으며 구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진다는 올바른 구원론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로마 가톨릭의 성찬에도 참예하지 않고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는 수순(手順)에 이르게 되었으며, 사제서품도 받지 않았다.
1522년에 불링거는 츠빙글리가 인도하는 프로페차이’(Prophezei, 설교준비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며 츠빙글리의 개혁사상을 직접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취리히 개혁을 열정적으로 잘 감당했던 츠빙글리가 제 2차 카펠전투에서 전사함으로 취리히 종교개혁은 종식되는 듯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신 한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불링거였다. 워커(Williston Walker)는 말하길 전장에서 츠빙글리의 몸이 네 등분되어 살해되었고 불태워졌다. 그리하여 독일어권 스위스의 종교개혁은 정지되는 듯했다. 그러나 유능하고 친화력이 있는 불링거가 종교개혁의 사역을 계승하였다고 했다. 츠빙글리가 목회하고 설교했던 취리히의 그로스뮌스터 교회의 후임 목사로 그의 후계자인 블링거가 27살에 목회와 설교사역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츠빙글리가 그 교회에서 18년 사역한데 비해, 불링거는 1575년에 하나님의 품으로 가기 전까지 44년간 그 직무를 성실하게 잘 감당했으며 취리히 종교개혁의 과업을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불링거의 신학적 공헌
종교개혁자로서 불링거의 위대한 신학적 공헌은 두 가지 이다. 첫째, 츠빙글리의 신학을 잘 계승하고 확립하였다. 불링거는 츠빙글리보다 20년 후에 태어나서 츠빙글리와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면서 그의 신실한 제자가 되어 츠빙글리 사후 40년 이상을 그로스뮌스터 교회를 담임하였다. 불링거는 츠빙글리의 신학적 사상과 거의 일치 하면서 츠빙글리의 개혁신학을 잘 체계화 시킨 인물이다. 둘째, 개혁교회의 신학적 이론을 통합적으로 잘 융합하고 체계화 시켰다. 불링거는 츠빙글리의 극단적인 사상과 칼빈의 사상을 균형있게 잘 절충하고 통합을 하였다. 예를 들면 성찬신학에서도 츠빙글리의 극단적인 상징설과 칼빈의 영적 임재설의 중도적 견해를 피력함으로 개혁교회 신학자들의 신학적 일치점과 공통분모를 확보해 나갔다. 불링거의 가장 귀중한 공헌은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Heidelberg Catechism, 1563)과 함께 개혁교회의 소중한 문서인 2 스위스 신앙고백’(Second Helvetic Confession, 1566)을 작성했다.
 
불링거의 설교 특징들
칼빈과 함께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파렐의 설교 유산이 전무한 것과 달리 불링거는 150여권의 수많은 저작과 설교를 남겼다. 특별히 십계명, 사도신경, 그리고 성례에 관한 설교들이 잘 보전되어 있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불링거의 열편의 설교모음집(the Decades, 10편씩 있는 5권 설교 모음집)이다. 세 가지 설교 특징이 있다.
첫째, 개혁교회 설교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루터파 교회들이 아우스브르크 신앙고백을 따르는 교회라고 한다면, 칼빈주의나 개혁파 교회들은 불링거 한 사람에 의해 작성된 2 스위스 신앙고백을 신앙고백하는 교회이다. 설교의 중요성을 다른 어느 신앙고백보다 더 강조한 2 스위스 신앙고백에서 불링거는 개혁교회 설교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하나님 말씀을 설교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다(the preaching of the Word of God is the Word of God). 하나님의 말씀이 합법적인 설교자에 의해서 교회에서 설교되어질 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것이며, 그 말씀은 신실한 성도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이 사상은 칼빈에게 뿐만 아니라, 20세기 최대의 개혁교회 신학자 중의 한분인 칼 바르트(Karl Barth)교회 교의학(Church Dogmatics)삼중적 설교신학과 말씀론의 기초가 되고 있다. 즉 블링거는 개혁교회의 설교론의 토대를 마련한 설교자이다.
둘째, 연속강해 설교를 하였다. 루터가 절기와 교회력에 따라 설교한 것과 달리, 개혁교회 종교개혁 설교자들인 칼빈과 츠빙글리는 연속강해방식’(lectio continua)을 따라 설교했다. 불링거는 칼빈이나 츠빙글리처럼 연속설교 방식으로 설교했지만 그들과 다른 독특한 연속설교 방식을 취하였다. 특별히 불링거는 다른 개혁교회 설교자들이 설교하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계시록(Apocalypse)을 설교하기를 즐겨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또한 불링거의 열편의 설교모음집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지역에서 목회자들의 연장교육을 위한 설교교재로 사용되어져 왔다.
세째, 삶으로 보여 지는 인격적인 설교를 하였다. 필립스 브룩스(Phillips Brooks)는 말하길 설교란 인격을 통한 진리의 전달이라고 언급했다. 불링거는 자기의 월급으로 전투에서 사망한 자기의 스승 츠빙글리의 미망인과 그의 두 자녀와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돌보고, 신앙 때문에 박해받는 망명자들과 피난민들을 취리히에서 헌신적으로 보살피는 귀한 일들을 잘 감당한 사랑의 설교자였다. 다간은 설교자로서 불링거의 인격에 대하여 그는 지혜롭고, 참을성이 있으며, 용기가 있었지만, 성급하지 않고 경솔하지 않았다. 수많은 저작과 계속되는 연구와 강단 사역을 충실하게 감당하면서도 그는 자기 가정과 친구들에게 사려깊고 부드러운 관심을 기울였다고 했다. 그래서 불링거의 설교는 더욱 가치가 있고 고귀함이 느껴진다.
 
나가는 말
설교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는 설교자론이다. 설교는 효과성(效果性) 보다는 진정성(眞正性)이 더 중요하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설교자의 진정성을 다시한번 되새겨 본다. 설교는 설교자의 인격(ethos)과 온전한 삶을 통하여 강단에서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 영적 감화력과 영향력이 있게 된다. 정직, 진실함, 사랑, 겸손, 포용심, 그리고 설교자의 신행일치 등은 설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중요한 요소이다. 다시한번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이 제2의 불링거로서 살아가기를 기도하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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