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현교수-설교로 보는 종교개혁(6)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의 설교세계
기사입력 2017.06.1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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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로 보는 종교개혁(6)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의 설교세계
 
들어가는 말
중세시대 말에 여러 명의 개혁자들과 설교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설교사역에서 가장 걸출하고 독보적인 존재는 기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설교사역은 중세 말에 큰 획을 긋는 감동 그 자체를 전하는 마지막 예언적 설교자로서, 루터의 종교개혁의 다리를 놓은 위대한 종교개혁의 세례요한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신비주의자나 개혁가로 이해하기 보다는 위대한 설교자의 반열에 소개됨이 정당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의 사역의 모든 초점은 설교를 통한 시민정신의 개혁, 교회의 개혁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보나롤라의 생애
사보나롤라는 1452921일 이태리의 페라라(Ferrara)에서 일곱 형제 중에 셋째로 태어났으며, 조부의 직업을 따라 의과대학에 들어갔으나, 사회의 부패에 대한 깊은 아픔을 보고 방향을 바꾸었다. 급기야 23살에 집에서 비밀리 가출해서 블로냐(Bologna)에 있는 도미니칸 (Domonican) 수도원에 1474년에 들어가서 어거스틴(Augustine), 토마스아퀴나스(Tomas Aquuinas)와 성경에 친숙하기 위하여 히브리어 헬라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사보나롤라는 일찍이 사회의 부패상에 눈을 떠서 자기의 안위보다는 나라와 민족 그리고 교회의 아픔을 몸으로 체득화 함으로 놀라운 예언자적 식견을 젊은 시절부터 소유했다. 이는 그가 앞으로 어떤 예언자적인 길을 걸어갈 것인지? 어떤 형태의 설교를 할 것인지? 어떤 죽음을 선택하게 될지? 를 예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보나롤라는 1482년에 플로렌스(Florence)에 있는 산 마르코(San Marco) ()수도원으로 옮겨서 플로렌스 도시와 성직자의 부도덕한 죄를 비판하는 예언자의 총기가 넘치는 설교자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가 원했던 이상은 플로렌스에 도덕적인 개혁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신정 민주주의(theocratic democracy)였다. 그러나 그의 개혁적 설교와 행동으로 인해 수많은 대적자들이 생겨났다. 결국에는 1495년에 교황 알렉산더(Alexander) 6세는 그의 계속되는 교회와 성직자에 대한 예언자적 비판을 트집 잡아서 로마 교황청으로 그를 소환 통보를 했고, 설교를 금지시켰으며, 1497년에 출교시켰다. 급기야 1498년에 적들에 의해 사보나롤라는 체포당해서 잔인하게 고문을 당했고, 그해 523일에 교수형에 처해졌고 그의 몸은 화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의 순교는 순교 자체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틴 루터는 사보나롤라의 순교에 대하여 그는 중세의 수도사가 아니라,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다고 언급했다. 그의 죽음은 종교개혁을 알리는 신호탄이며 종교개혁자의 여명(黎明)이었다.
 
사보나롤라의 설교 특징들
그의 설교는 중세말의 다른 설교자들의 설교방식과 전혀 다른 비정통적(unorthodox)인 방식으로 설교했다. 그래서 그의 설교의 내용과 방식은 늘 논쟁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가 명성을 얻음에 따라서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사보나롤라의 설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예언적 설교(prophetic preaching)의 원형이다. 필립 사프(Philip Schaff)기독교회사(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에서 사보나롤라의 설교에 대하여 사도바울 이후로 ’(righteousness)에 관한 한 가장 훌륭한 설교자 중의 한분이었고, 그의 메시지는 예언자의 외침 이었다고 했다. 예언적 설교는 설교학적 과제인 본문(text)와 상황(context) 모두에 충실한 설교라는 점에서 사보나롤라의 설교는 예언적 설교의 좋은 모델이 된다. 사보나롤라의 설교의 주요 주제는 그 당시 일반백성들을 포함한 지도자들의 나쁜 습관들, 성직자들과 심지어 교황의 잘못된 비리와 부패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는 예언적 설교를 강렬하게 퍼부었다. 교황은 사보나롤라의 공격적인 설교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그에게 유혹의 제스처를 보냈을때 사보나롤라는 분노하면서 나는 그러한 것들을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주교직을 원하지도 않고, 추기경의 모자(cardinals' hat)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오직, 죽음입니다. 피로 붉게 물든 모자, 피비린내 나는 모자를 원합니다고 응답했다. 사보나롤라는 그의 소원대로 장렬하게 순교의 피를 흘리게 되었다. 사보나롤라의 순교의 정신을 담은 예언적 설교는 모든 기독인과 설교자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다.
둘째, 탁월한 설교전달력(deliverly)을 가진 대중 설교자였다. 사보나롤라는 설교초기에 많은 실패의 경험을 가진 설교자였다. 그는 열정적이었지만 직선적이고 거친 전달방식으로 인해서 회중의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여러 차례 설교의 쓴 잔을 마셨다. 그래서 그는 실망감의 표현으로 앞으로 설교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자책하면서 수도원에 들어가서 설교연구와 설교능력 향상에 몰두했다. 그후 롬바르디(Lombardy)와 플로렌스에서 다시 설교를 재개하면서 그의 설교 전달 방식은 예전과 달랐다. 팬트와 핀슨은 다음과 같이 그의 설교가 발전한 모습과 대중성을 묘사하였다. “148981, 수도원 교회에 회중들이 모였다. 회중들로 모든 공간을 다 채웠는데 심지어 창문의 쇠창살까지 매달려서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모였다고 언급했다. 다간(E. C. Dargan)은 사보나롤라의 설교에 대하여 설교자로서 사보나롤라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설교자의 반열에 오른다. 그는 체구가 작았지만 그의 제스처는 우화하고 적절했다. 그의 음성은 맨 처음에는 다소 거칠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리가 아름답고, 풍부하고, 낭랑하며 분명했다. 루터의 선구자로서 위클리프, 후스, 사보나롤라 중에서 리더쉽은 위클리프가, 설교는 사보나롤라가 단연 최고다고 했다.
세째, 인격적 감화력이 있는 설교자였다. 사보나롤라는 부패한 중세 말의 시대상과 달리 고고한 인격적인 삶을 산 설교자이다. 다간은 사보나롤라의 인격의 훌륭함에 대하여 그는 어린 시절 부터 전 생애 걸쳐서 순수하고 경건했다. 심지어 그의 대적자들 까지도 이 부분에 대하여서는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는 천성적으로 친절했고 사랑이 많았다. 따뜻하게 우정을 맺고 잘 지속했다. 개인사에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비이기적인 태도로 일을 하였기에 흠잡을 데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사보나롤라의 설교에서도 옥의 티와 같은 설교의 약점이 있었다. 팬트와 핀슨은 지적하길 그의 성경해석은 종종 알레고리의 투박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선포보다는 자기도취에 취해 자기 상상(fancy) 속에 빠져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설교는 모든 설교자들에게 설교자의 자세(ethos)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설교자의 모델이 되고 있다.
 
나가는 말
사보나롤라의 설교를 연구하면서 몸과 마음과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서 예언적 설교를 한 그의 열정(pathos)과 정신(ethos)에 저절로 숙연(肅然)해져 온다. 작금의 대한민국의 상황과 한국교회의 모습은 마치 사보나롤라가 살던 시대와 비슷하거나 더욱 패역(悖逆)으로 치닫고 있지 않은가? 이에 개혁의 주체이면서 개혁의 대상인 조국교회의 불 신앙적 모습, 비도덕적인 악행으로 인해 스스로 주저 않기 전에 제 2의 사보나롤라의 정신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지 않은가? 또한 강단에서 회중의 치유와 안위만을 중심으로 전달하는 설교에서 성경에 기반을 둔 건강한 예언적 설교를 기다리고 기대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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