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로 보는 종교개혁(5)

기사입력 2017.05.23 16:3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얀 후스(Jan Huss)의 설교세계 

들어가는 말
이 세상에는 위대한 일을 하고서도 일반 세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 종종 있다. 바로 구 체코로 명명된 보헤미아(Bohemia)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Jan Huss, 1373-1415)이다. 후스의 종교개혁운동은 루터의 종교개혁보다 100년이나 앞서서 교황청의 부패, 성직매매와 면죄부 판매 등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완성도 있는 종교개혁을 한 종교개혁의 선구자이지만 우리에게는 낯설다. 그는 체코인들에게 체코 종교개혁의 아버지로서 불리우며 루터의 종교개혁의 길을 연 종교개혁의 세례요한이라 볼 수 있다.
 
개혁자로서 후스
후스는 1373년 가난한 부모 밑에서 보헤미아의 후시네츠(Husinec)에 태어났다. 그는 프라하 대학(the University of Prague)에 진학해서 1396년에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1400년에 사제서품을 받고, 1401-1402년에 겨울학기에 문과대학 학장이 되었다. 1409년에 신학박사 과정을 다 마쳤지만 마지막 해에 학문적인 논쟁에 휘말려서 박사학위를 수여 받지 못했다. 1402년에 프라하에서 체코 개혁운동의 중심부에 서있는 베들레헴 채플(Bethlehem Chapel)의 설교자로 임명받아 체코어로 설교함으로 회중으로부터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체코에서 면죄부가 판매되자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함에 따라 설교권을 박탈당하고 시골로 피신해야하는 신세가 되어, 교회당이 아닌 숲과 들에서 설교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후스는 1412년에 새로운 교황 요한 23세에 의하여 출교 당했다. 그사이에 그는 위대한 저작인 교회에 대하여’(De Ecclesia)를 저술했는데 이마저 기소를 당했다. 드디어 콘스탄츠 공의회(the Council of Constance)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어서, 1415년에 화형에 처해졌다. 이 소식이 체코 전역에 퍼짐으로 해서 많은 시민이 공분(公憤)했고 이로 인하여 그를 따르던 시민들이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려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체코의 종교개혁이라 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절대로 헛되지 않고 마틴 루터의 개혁운동에 다리를 놓았다. 그는 죽어가면서 지금 거위 한 마리를 불태우지만 한 세기가 지나면 태우지도 끊이지도 못할 백조를 만나게 될 것이란 예언을 했다. 후스는 체코어로 거위라는 뜻이다. 그의 죽음으로 부터 100년이 지난 후 루터가 불을 지핀 개혁운동은 마침내 로마 가톨릭 교회를 와해시키고 새로운 정치적 영적 질서로의 재편에 이르게 되었다. 순교의 위대한 열매였다. 그가 화형당한 이후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보헤미안 공동체를 만들고, 그의 주장은 마르틴 루터 등 알프스 이북의 종교 개혁가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현재에는 18세기 이후에 설립된 모라비아 교회 혹은 체코 개신교라는 명칭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루터는 말하길 우리는 모두 후스파이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후스의 개혁운동은 종교개혁의 선구자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후세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후스가 화형을 당하던 순간을 기독교 순교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사형 집행 장소에 이르자 그는 무릎을 꿇고 시편 몇 구절을 노래하더니 계속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 주님, 당신의 손에 저를 의탁 하나이다! 내 영혼을 의탁하나이다. 당신은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오 가장 선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시여! 장작 단에 불이 붙자마자 순교자는 아주 힘찬 목소리로 찬송을 불러서 그 찬송 소리는 장작이 타는 바삭거리는 소리와 군중들의 소음을 초월하여 들렸다. 드디어 그의 목소리는 불길로 말미암아 끊어졌고 그는 곧 종말을 고했다
후스의 설교 특징들
후스의 설교는 위클리프 설교와 깊은 연관이 있다. 위클리프는 후스의 신학과 설교에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설교를 더욱 강화시켰다. 다음은 그의 설교의 특징들이다.
첫째, 유연성 있게 성서의 권위를 강조한 설교였다. 후스는 위클리프의 강력한 영향 가운데 성서중심의 복음적 신앙에 힘입은 바 크다. 후스는 가난한 집안사정 때문에 더 경제적인 윤택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빠르게 출세할 수 있는 길은 사제가 되어서 경제적으로 안락한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읽고 묵상해가면서 자신의 생각이 올바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를 회심케 한 중요한 동인이 바로 성경이었다. 이 성경의 힘이 후스를 온전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성경을 근거로 해서 교황청의 부패와 타락에 대하여 강력하게 글과 설교로서 비판을 했다. 왜냐하면 성경이 모든 제도, 교리, 사상, 신앙의 근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중세에 성경 해석권을 독점한 교황과 고위성직자의 독점적인 자세를 비판하면서,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 누구나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별히 후스의 설교에 대하여 체코 선교사인 이종실은 말하길 후스는 설교에서 먼저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서 회중들의 일상의 삶과 유혹의 문제 등을 성경과 관련시켜서 설교하였다. 그러나 위클리프가 성경 외에 다른 권위를 일체 허락하지 않은데 비해, 후스는 성경에 충돌되지 않는 교부들의 전통과 함께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였다했다. 이는 성경의 권위를 최고로 인정하면서 유연하게 설교를 한 후스의 포용성이라 하겠다.
둘째, 진리에 관한 한 신앙 고백적 확신이 가득 찬 예언적 설교’(prophetic preaching)를 하였다. 패티슨(T. Harwood Pattison)기독교 설교의 역사(History of Christian Preaching)에서 진리에 가득 찬 후스의 설교에 대하여 말하길 나는 절대로 내 양심에 반하는 거짓 증거를 가르친 적도, 설교한 적도 없다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시다라고 했다. 그는 진리에 관한 한 추호의 타협도 양보도 하지 않았다. 후스에게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주제는 진리였다. 진리에 대한 그의 소신은 추호의 타협이나 양보가 없었다. 다간(E. C. Dargan)의 표현처럼 그가 전하는 언어의 중량감, 힘과 신념에 대한 신실함을 통한 강력한 예언적 설교는 보헤미야 종교개혁을 이루게 하는 영적 에너지로 작용했다. 결국 불의에 저항하는 그의 예언적 설교와 행동 때문에 그는 이단으로 정죄 당하고 극형에 처하게 되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개혁의 봉화를 높이 든 루터에게서 승리를 맛보게 되었다.
후스의 강력한 예언자적 설교에 비하여 그의 설교의 부족한 면에 대하여 다간은 후스의 설교는 주로 라틴어로 되어있는데 수사학적 측면에서는 빈약하고, 엉성한 라틴어로 쓰여졌으며, 건조하고, 논쟁적이었다. 그에게 탁월한 연설가의 은사는 없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설교에서는 효과성보다 더 중요한 진정성이 더 가치 있음을 볼 때, 후스의 설교는 개혁적인 설교를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귀한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는 말
후스의 설교를 연구하면서 현대설교에 적용 가능한 요소들로는 한국교회 강단에서 성서를 기반으로 하는 예언적 설교의 회복이 필요하다. 삶의 무게 때문에 힘겨워하는 현대 회중에게 안위와 치유적인 설교로 만 점철된 한국교회 강단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예언적인 설교를 포함한 균형 있는 설교에로의 회복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후스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교회는 개혁의 주체이면서 개혁의 대상임을 기억하며 강단에서 예언자의 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조성.gif
 
c0f3e824ba8244205a96245818e47405_odvDbvGzApMGpiCHyivT.gif
 
<저작권자ⓒe뉴스한국 & www.enkorea.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10247
 
 
 
 
  • e뉴스한국(http://enkorea.kr)  |  설립일 : 2003년 6월 20일  |  부산광역시 동구 중앙대로 298 부산 YWCA 304호
  • 발행인 : 박수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정
  • 사업자등록번호 :  605-90-93848
  • 대표전화 : 051-462-5495 [오전 9시!오후6시 / 토, 일, 공휴일 제외(12시~1시 점심)]  |  메일주소 : enews88@hanmail.net
  • Copyright © 2007-2009 enkorea.kr all right reserved.
e뉴스한국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