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 교수의 선교사 이야기 66,

언더우드 가문의 한국선교
기사입력 2017.03.1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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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선교사 이야기 66,

 언더우드 가문의 한국선교

1. H. G. Underwood
한국에서 일한 선교사가 가운데 특히 몇 가정은 선교 명문가로 불리고 있다. 그 중 한 가문이언더우드 가문이다. 한세대로 끝나지 않고 4대에 걸쳐 한국을 위해 봉사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 첫 선교사가 Horace Grant Underwood(1859-1916)인데 한국이름 원두우(元杜尤)로 잘 알려져 있다. 1859년 7월 19일 영국 런던에서 유명한 과학자인 존 언더우드와 엘리자베스의 6남매 중 4째로 출생한 그는 13살 때인 1872년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881년 뉴욕대학을 졸업하고 화란개혁파 계통의 신학교육기관인 뉴브른스윅 신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1884년 6월에는 목사안수를 받았다. 선교사가 되고자 했던 그는 인도로 가기를 원했고 인도어까지 공부한 바 있으나, 민영익을 통해 한국 선교의 시급성을 깨닫게 되어 한국으로 오게 된다. 즉 그는 미국북장로교 해외선교부로부터 한국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1884년 말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1885년 1월 일본에 도착했다. 일본에 잠시 체류할 때 일본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수정을 만나 한국어를 배우고, 또 그가 번역한 마가복음서를 들고 한국으로 행해 부산항을 거쳐 1885년 4월 5일 저녁 무렵 인천항으로 입항했다. 한국 도착 5일 후에 알렌에 의해 광혜원이 개원했는데, 이곳에서 한국의 의료 후보자들에게 화학과 물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한국에서의 첫 사역이었다. 후에는 새문안교회를 설립하고(1885), 1886년에는 첫 고아원을 개설했다. 이들 아동들을 위한 교육이 예수교학당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나 후에 경신학교로 발전하였다. 1889년에는 후임 선교사를 위해 ‘한국어 문법’과 ‘한영사전’을 편찬했고, 기독교문서운동을 위해 ‘조선선교서회’를 조직했다. 1897년에는 ‘그리스도신문’을 창간하였다. 그 외에도 기독교청년회 조직(1900)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조선교육협회(1904) 회장으로 일하는 한편, 선교사공의회, 혹은 장로교공의회 회장(1899-1900)에서 활동하고, 독로회장(1909)으로, 그리고 조선야소교장로회 초대 총회장(1912)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특히 대학설립에 대한 이상을 가졌던 그는 1912년 귀국하여 언더우드 타자기 창업자인 형 존 T. 언더우드로부터 5만2천 달러의 기부금을 인수하였고, 이 자금을 기초로 연희동의 부지를 확보하고 1915년 대학을 설립했다. 이것이 Chosun Christian College였는데 지금의 연세대학교의 전신이 된다. 새문안교회 외에도 여러 교회를 설립하거나 설립을 지원하였고, 1889년에는 8년 연상의 여의사 릴리아스 홀톤(L. Horton)과 혼인했는데, 우리나라에서 행해진 첫 서양인의 결혼이었다. 결혼한 그는 신혼여행을 겸해 순회전도여행을 시작하였다. 그 외에도 여러 저서를 출간하였고, 성경번역과 개역, 찬송가 편찬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1890-1892, 1901-1902, 1906-1908, 1912-1915년에는 안식년 혹은 공무로 미국을 방문한 바 있다. 이처럼 그는 31년간 조선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했는데, 예기치 못한 발진티부스의 악화로 1916년 4월 요양차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회복되지 못하고 10월 12일, 57세를 일기로 뉴저지주 에틀랜틱시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먼저 저 먼 나라로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소.”라고. 그래서 부인이 물었다. “거기가 어디예요? 한국 말씀인가요?”라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는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교회를 사랑했다. 연세대학교에 설치된 그의 동상에는 ‘하나님의 사자’(Messenger of God)로 우리나라에 와서 ‘그리스도의 제자’(Follower of Christ)로 살면서 ‘한국인의 친구’(Friend of Korea)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로부터 83년이 지난 1999년 7월 그의 유해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외국인묘지로 이장되었다. 원두우 선교사의 독자 H. H. Underwood, 곧 원한경은 아버지에 이어 제2대 선교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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