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욱 칼럼 87 승자와 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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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길은 언제나 익숙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만은 않았다. 인공이 가미된 고향 길은 부분적으로 낯 설기도 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 계신 산 아래 마을에 주차를 하고 산길을 올랐다. 형님과 함께 오를 땐 도란도란 얘기 나누느라 무심히 지나갔지만 혼자 산을 오르며 이 곳, 저 곳 눈길을 주게 되었다. “창암정(蒼岩亭)”이란 현판이 붙어 있는 집을 발견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분이 보이기에, 과거에 “하 독산” 마을에 살았고 지금은 부산에 나가 있다고 내 신분을 밝히고 허락을 받아 그 집을 둘러봤다.
할머니 산소 벌초하고 내려오다 다시 마주쳤다. 그 분은 무척산관광예술원 대표에게 나를 하독산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고향 사람을 만나면 초면이라도 금방 구면이 된다. 통성명을 하면서 바로 예술원 안으로 나를 안내한다. 노 대표는 친가와 외가의 부조의 삶의 궤적을 설명했다. 내 눈에 확 들어온 사진이 있다.
한 장은 그의 조부가 흑룡강 성에서 교사생활을 할 때의 사진이라고 했다. 한 때 내가 조선족과 함께 공부하며 그 조선족 친구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흑룡강 성엔 경상도 사람이 많이 살고 있다고 했는데 이번 길에 그 증거를 하나 발견하게 된 것이다. 또 한 장의 사진은 제방을 쌓고 있는 현장 사진이었다. 강을 끼고 있는 곳이면 으레 그랬듯이 생림면 이작 들판도 여름철이면 낙동강물이 범람하여 농사를 망치기 일쑤였다. 이작들의 북쪽에 해당하는 마사리 북곡 마을에서 안양리 창암 마을까지 제방을 그의 외조부이신 정영태 선생이 사재를 출연해 쌓았다.
어릴 때 전설처럼 들었던 이야기를 그 외손으로부터 직접 듣고 당시 사진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초등학교 5학년 때에 마사리 독산 마을로 이사 가서 살면서 여름날 낙동강에 물이 불어나면 온 동리 사람들이 모여 대비하고 대피하던 기억이 있다. 왜정 시대에 쌓은 둑은 홍수에 무너진 적이 없었는데 해방 후, 덧쌓은 둑은 무너진 적도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정영태 선생의 노력이 새삼 고맙게 여겨졌다. 나라가 있을 때도 험한 짓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라가 없을 때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애썼던 분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류분석 이론의 창시자인 에릭 번은 “자신이 선언한 목표를 달성한 사람”을 승자(勝者)라고 정의했고, 굴딩은 “목표 달성을 통해 세상을 더욱 나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을 승자라고 덧붙였다. 승리란 “선언한 목표”를 편안하고 행복하고 무리 없이 달성하는 것을 말한다(현대의 교류분석. 156쪽). 제임스와 존지워드는 승자를 “타인을 제압하고 패하게 함으로써 상대를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믿을 만하고 신의가 있으며 민감하고 성실한 사람을 뜻한다.”고 했다. 그들에 의하면 “진솔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패자(敗者)이다. 정영태 선생은 그런 의미에서 승자라고 할 수 있다.
“편안하고 행복하고 무리 없이 달성하는 것”을 나는 “정당한 방법으로 목표를 이루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하나님께 지음 받은 대로(창1:26~28) 산다면 승자로 살아갈 것이다. 에덴동산에서의 타락 이후, 사람은 진솔하게 행하지 못하고 패자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우리는 살아날 수가 없다(창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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